일본 동북지역 이야기

[Ted 스토리] 다테 마사무네의 가장 아픈 손가락, 고로하치히메(덴린인)의 숨겨진 신앙

아꿈자60 2025. 12. 25. 13:30

독안룡이 가슴에 묻은 십자가, 아들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딸 고로하치히메의 비밀

 

안녕하세요. 가끔 역사의 뒤안길을 여행하는 블로거 Ted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전국시대의 호걸 다테 마사무네의 야망을 이야기했다면, 오늘은 그의 심장 깊숙한 곳에 박힌 슬픈 가시 같았던 딸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흔히 이로하히메라는 예쁜 애칭으로 불리지만, 역사 속 진짜 이름은 투박하기 그지없는 고로하치히메.

그녀가 이혼 후 절에 들어가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진 표면적인 역사 뒤에는, 목숨을 걸고 지켜낸 금지된 신앙과 그런 딸을 차마 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눈물겨운 침묵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애달픈 부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1. 아들을 바란 아버지의 욕심, 고로하치(五郎八)라는 이름

그녀의 정식 역사적 호칭은 고로하치히메입니다. 한자로 五(다섯 오), 郎(사내 랑), 八(여덟 팔)을 씁니다.

다테 마사무네는 정실 메고히메 사이에서 첫 아이가 생기자 당연히 후계자가 될 아들이라 믿고 미리 고로하치라는 씩씩한 남자 이름을 지어두었습니다. 하지만 태어난 것은 딸이었습니다. 마사무네는 "이 아이는 내 후계자나 다름없다"며, 혹은 호쾌한 성격 탓인지 딸에게 남자 이름을 그대로 붙여버렸습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이로하히메는 이 거친 어감을 부드럽게 부르기 위해 후대나 대중매체에서 붙인 애칭입니다. 오늘은 그녀의 삶의 무게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정식 이름인 고로하치히메로 부르겠습니다.

2. 에도에서 만난 운명, 그리고 숨겨진 십자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과 정략 결혼하여 에도(도쿄)에 머물던 시절, 그녀의 운명을 바꿀 만남이 있었습니다. 바로 기독교(천주교)였습니다. 서양 문물이 넘치던 에도에서 그녀는 선교사들을 접하며 깊은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유배당하고 강제 이혼을 당해 친정인 센다이로 돌아왔을 때, 세상은 기독교를 사교로 규정하고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다테 가문 역시 막부의 명령으로 영지 내의 신자들을 처단해야 했습니다.

이때 세상에 알려진 바로는 그녀가 불교에 귀의했다고 했지만, 그것은 거짓이었습니다. 그녀는 삭발하고 승려의 차림을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결코 배교하지 않았습니다. 겉모습은 불교도였으나 내면은 죽는 순간까지 독실한 키리시탄(기독교 신자)이었던 것입니다.

3. 딸을 고발할 수 없었던 아버지, 마사무네의 침묵

이 비극의 또 다른 주인공은 아버지 마사무네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냉철한 정치가이자 영주였지만,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딸이 금지된 종교에 깊이 빠져 있다는 사실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사무네는 딸이 밤마다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올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영주로서 그녀를 처벌하거나 개종을 강요해야 했지만, 그는 끝내 침묵을 택했습니다. 막부의 감시 눈초리 속에서도 자신의 성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딸의 신앙만은 모른 척 눈감아준 것입니다.

어쩌면 천하를 호령하던 독안룡에게 가장 무거웠던 짐은 전쟁터의 갑옷이 아니라, 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삼켜야 했던 그 비밀의 무게가 아니었을까요?

4. 죽음마저 거부한 불교식 장례, 그녀의 마지막 증거

그녀가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그녀의 죽음 이후에 드러났습니다. 당시 일본의 관습은 불교식 화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부활을 믿기에 시신을 훼손하는 화장을 금기시하고 매장을 선호했습니다.

고로하치히메는 유언으로 자신을 절대 화장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구했고, 결국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매장되었습니다. 훗날 그녀의 묘소 발굴 조사에서 묵주와 십자가 등 기독교 성물들이 발견되면서, 평생 숨죽여 지켜왔던 그녀의 신앙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5. 그녀의 침묵이 잠든 곳, 쇼온지와 덴린인

그녀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는 센다이의 쇼온지(松音寺)로 향해야 합니다. 이곳은 다테 가문의 사찰이지만, 그 안에는 고로하치히메의 영묘인 덴린인(天麟院)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관광지의 느낌보다는 고요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감도는 곳입니다. 겉으로는 불교 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땅 아래에는 십자가를 품고 잠든 한 여인과 그녀를 끝까지 지켜준 아버지의 애틋한 비밀이 묻혀 있습니다. 역사적인 배경을 알고 묘소 앞에 서면,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시대의 파도 속에서 고뇌했던 한 인간의 안식처로 다가올 것입니다.

쇼온지와 덴린인


[Ted의 한마디] 남자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여인, 불교도의 옷을 입고 십자가를 쥐었던 신자, 그리고 그 모든 모순을 사랑으로 덮어준 아버지. 센다이 여행을 가신다면 쇼온지에 들러 고로하치히메의 묘소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보세요. 화려한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않은, 한 아버지와 딸의 절절한 이야기가 들려올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다테마사무네를 소개하는 [Ted 블로그] : https://tedyi60.tistory.com/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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